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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가 ‘죄’인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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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FC64B58431D381E1713폴란드 바르샤바 광장에서의 'Black Monday Strike' ⓒNPR


낙태가 ‘죄’인 사회

 

사무국장|김지연

 

내 배는 내 것이다

 1970년대 초, 독일 여성운동은 낙태의 자유를 요구했다. 당시 사용한 구호가 “내 배는 내 것이다”였다. 독일이 통일되기 전, 낙태는 동독에서는 합법이었지만 서독에서는 불법이었다. 동독 같은 경우, 임신 12주가 지나기 전이라면 본인의 결정에 따라 낙태를 할 수 있었지만 서독에서는 불가피한 경우에만 임신 12주 전 낙태를 허용했다. 서독은 지금 우리나라처럼 낙태를 형법에 명시하고 그에 따른 처벌을 내렸다. 그래서 서독의 여성운동은 신체적 자주권이라는 관점에 비추어 낙태의 자유를 합법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독일이 통일된 후에도 서독 지역에서 낙태는 불법이었다. 그러나 결국 1993년 낙태는 서독 지역을 포함한 독일 전 지역에서 사실상 합법화 되었다.

 사실상 합법화라고 표현한 이유는 낙태가 형법상으로는 여전히 불법이지만 전제조건에 따라 합법적 행위가 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독일에서는 국가 공인 사회복지법인에 소속된 상담소에서 ‘무료 임신 갈등 상담’을 하고나면 상담 증명서를 받는다. 증명서를 받은 후 본인의 결정으로 낙태를 하면 불법이 아닌 합법으로 인정된다. 또한, 이 때 비용은 원칙적으로 본인이 부담하지만 자신이 처한 사회·경제적 상황 등에 따라 본인 비용부담이 어렵다고 판단될 때는 의료 보험 조합에서 비용을 부담한다. 이렇게 독일에서 낙태는 더 이상 어둠 속에 자리 잡지 않게 되었다.1 (물론 상담 증명서를 제출하지 않고 낙태를 할 경우 여성 당사자와 의사는 형법에 의거한 처벌을 받는다.)


낙태의 합법→출산율 감소?

 과거의 독일은 우리나라처럼 분단국가였기에 우리가 통일을 말할 때 독일의 사례를 자주 언급한다. 그리고 이와 별개로 독일을 ‘선진 행정·복지 제도를 갖춘 국가’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독일의 제도 중 하나인 낙태 합법화와 관련된 논의는 공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 사회는 낙태 합법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면 그 사람을 ‘비도덕한 사람’, 더 나아가 ‘살인자’로 본다. 심지어 낙태를 한 여성에게 ‘살인자’라는 낙인을 찍는다.

 요즘 ‘검은 시위’로 인해 잘 알려진 ‘낙태죄’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권리가 아직 제대로 보장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9월, 보건복지부는 불법 낙태 수술을 ‘비도덕적 진료 행위’ 유형에 포함시키고 적발 시 수술을 집도한 의료인의 자격정지 기간을 최대 1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입법 예고했다. 하지만 의료계의 반발로 인해 일단 의료진의 처벌 강화 방안은 재검토하기로 했다. 문제는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조항2은 그대로라는 점이다. 그래서 여성단체들은 모자보건법3과 별개로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조항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혹자는 ‘낙태가 합법화되면 낙태율이 크게 증가해 출산율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앞서 소개한 독일의 경우를 한 번 보자. 1993년부터 사실상 낙태를 합법화한 독일, 낙태 수술이 크게 증가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NO’다. 1990년대부터 독일의 낙태 건수는 13만 여 건을 유지하다가 2001년에는 약 13만 5,000 건으로 최고 정점을 찍었다. 그리고 사실상 낙태의 합법화가 이루어진지 딱 10년이 되던 2003년부터는 낙태 건수가 13만 건 이하로 감소했다. 낙태 건수는 그 후로도 계속 줄어들면서 2014년 이후에는 9만 9,000여 건에 머무르고 있다. 또한, 낙태가 사실상 합법화된 이후로 독일은 의료 보험 조합을 통한 낙태 현황 파악을 정확히 할 수 있게 됐다. 더 이상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숫자가 아니게 된 것이다. 그리고 혹자가 출산율은 오히려 상승했다. 가임기 여성 1,000명 당 출산율은 ‘2007년 39.1’명에서 ‘2014년 42.1명’으로 상승했다. 이는 최근 독일의 합계 출산율이 1.3명에서 1.5명으로 올라가고 있는 상황을 반영한다.4 (참고로 작년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은 1.24명으로 OECD 최저 수준이다.)

 

어디서부터 해결해야...

 어른이 된 내게 아직까지 충격으로 남아있는 영상이 있다. 바로 한 시설에서 중3 학생들에게 보여준 낙태 수술 영상이다. “몇 번의 가위질만으로 하나의 소중한 생명이 사라집니다. 이러한 낙태는 살인이니까 우리 여학생들은 절대 낙태를 하면 안 됩니다.” 이것이 그 영상을 학생들에게 보여준 목적이고 이유였다. 하지만 당시 이 영상을 본 학생들은 성별에 상관없이 무서워했다.

 6년이 지나고 문득 떠올린 이 기억을 통해 나는 어쩌면 우리가 지금껏 받아온 성교육에 의해 성에 대한 잘못된 프레임을 갖게 된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러한 프레임이 낙태죄, 특정 성에 대한 혐오 등 지금과 같은 상황을 불러온 게 아닐까.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초등학교부터 받는 성교육은 지나치게 표면만 건드리거나 지나치게 충격적(일명 충격요법)이기 때문이다. 피임과 낙태로 예시를 들어보면 피임법에 대한 내용에서 콘돔은 사진 한 두 장만 보며 한 두 줄의 설명만 한 채 넘어간다. 피임법에 대해 알려주겠다는 건지 학생 스스로 배우라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반면 낙태는 영상까지 보여주면서 너무 자세히 알려주어서 학습 내용보다는 학생들에게 충격과 공포만 남게 되는 것 같다.

 이전가지는 나 혼자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아 이것이 잘못된 생각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고나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도 나누다보니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금까지 우리가 공교육이라는 그늘 아래서 받은 성교육은 바람직하지 못했다.

 

검은 시위는 현재진행형

 스스로 낙태를 하려다 감염되어 고통 속에서 죽어가던 소녀가 있었다. 한 여자가 이를 발견했고, 이 사건으로 자신의 직업에 대한 회의를 느낀 그녀는 간호사라는 직업을 그만두었다. 당시 소녀를 발견한 간호사의 이름은 ‘마거릿 생어’다. 그녀는 “여성의 몸에 대한 통제권은 여성 스스로가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고 결국 미국 법원은 1937년, 당시 불법이었던 피임을 합법화했다.

 우리나라도 한 때 피임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 피임은 우리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이처럼 낙태 역시 여성이 누릴 수 있는 권리 중 하나로 우리 사회에 자리 잡을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한다. 그 날을 위해 오늘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검은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1. 『여성신문』, [정재훈의 시선] “내 배는 내 것이다” 독일 여성들은 어떻게 낙태의 자유를 얻었나 , 2016.10.15. [본문으로]
  2. 형법 269조 1항: 임신한 부녀가 약물을 이용하거나 기타 방법으로 스스로 낙태한 때에는 낙태한 여성은 징역 1년 이하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본문으로]
  3. 5가지 사항(△산모와 배우자의 유전적 정신장애, 신체질환 △산모와 배우자의 전염성 질환 △강간에 의한 임신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 △산모의 건강이 우려되는 경우)에 따른 낙태는 본인 또는 배우자의 동의를 조건으로 허용됨. 단, 이외의 낙태는 모두 불법. 위에 적은 조건에 해당되는 ‘합/법/적’ 낙태도 임신 24주 이내에만 가능. [본문으로]
  4. 『여성신문』, [정재훈의 시선] “내 배는 내 것이다” 독일 여성들은 어떻게 낙태의 자유를 얻었나 , 2016.10.1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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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note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안그래도 친구여자와 걸으며 낙태합법찬반 관련 이야기를 나눈 적 있었는데 전 생명존엄성훼손이 미치는 사회적 영향을 근거로 반대였고 친구는 여성의 미래에 발목이 될 수 있는 경우(원치않은 임신)와 자기 몸으로서 임신의 선택권을 두며 합법을 주장했죠. 나중엔 과거 남아선호시대때 낙태 선택에 대한 당위성으로 충돌이되면서 이야기가 끝났지만  이후 느낀 남녀가 다른 생각차를 더 이해해보려고 관련 기사와 책을 찾아 보고 있습니다